자료=기후솔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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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리아] 철강 수출량 세계 3위 우리나라가 탄소저감 기술인 수소환원제철 기술 경제성을 비교한 결과 주요국 중 가장 경제성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국내 기후단체 기후솔루션은 3일 이 같은 내용의 ‘녹색 철강 경제학: 세계 그린 수소환원제철과 전통 제철의 경제성 비교’ 보고서를 발표했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오래된 고로-전로 방식과 달리 수소를 이용해 철을 생산하면서 이러한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중요한 기술이다.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부산물로 이산화탄소가 아닌 물이 발생해 탄소 배출이 ‘제로(0)’에 가깝다.

철강 산업은 우리 나라의 기간 산업인 동시에 대표적인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이며, 산업 부문 배출량의 약 40%, 국가 전체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해당 산업의 장기적인 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는 성공적인 탈탄소 전환이 관건인 만큼 수소환원제철은 철강업계의 미래 먹거리로도 불린다. 

기후솔루션은 한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7개 지역의 수소환원제철 경제성을 비교 분석했다. 제철 과정에서 쓰이는 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그린수소만 조사 대상에 포함시켰고 수소 가격은 ㎏당 1·3·5달러 세 가지 경우로 구분해 분석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한국은 세 가지 경우 모두 주요국 중 수소환원제철 t당 단가가 가장 비싼 걸로 나타났다. 특히 수소 가격이 1달러일 때 다른 나라와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의 철강 가격이 t당 621달러(82만3200원)였다면 브라질은 476달러에 불과해 145달러(23.3%)의 차이를 보였다. 주변국인 중국(517달러), 일본(585달러)과 비교해도 10% 이상 차이가 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개 국가 중 kg 당 1달러(1350원)의 그린 수소 가격에도 수소환원제철 공정의 철강생산비용이 고로-전로 공정 비용보다 높은 유일한 국가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을 제외한 7개 국가는 그린 수소 가격이 kg 당 1달러(1350원)로 내려가면, 수소환원제철로 연간 1톤의 철강을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이 고로-전로 방식보다 더 저렴했다.

보고서는 국내 철강 제품의 경제성이 가장 낮은 주된 이유로 높은 재생에너지 가격을 꼽았다. 그린수소는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력으로 물을 전기 분해해 만드는데, 지난해 국내 태양광 발전 단가는 1메가와트시(㎿h)당 최대 147달러(약 19만7200원)으로 주요국 평균 최대치(47달러·약 6만3000원)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와 그린 수소 가격이 비싼 탓에 차세대 철강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에 보고서는 한국의 수소환원제철 경제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는 탄소 가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가의 대체재인 재생에너지와 그린 수소 가격보다 탄소 배출권 가격을 더 높게 설정하면 수소환원제철 생산 방식의 경제성이 증대된다는 것이다.

철강 경쟁력이 낮아지면서 향후 자동차, 건설, 조선업 등 주변 산업으로 비용 부담이 옮겨갈 거라는 전망도 나왔다. 자동차와 건설은 전체 가격에서 상승 폭이 1% 미만의 가격 변동성이 있지만 해운 산업의 경우 선박의 95% 이상이 철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약 11.6%의 가격 상승효과가 있을 걸로 예상된다.

김다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수소환원제철은 기후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요한 기술”이라며 “재생에너지 수요를 반영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과 탄소 배출권 제도 개편을 통한 저탄소 투자 선순환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요 철강 생산 국가들도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개발 및 상용화를 통해 철강산업 내 배출량을 감축하고 보다 친환경적인 철강 생산 공정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저탄소 철강 생산 기술 개발을 위해 추진 중인 한국 정부 지원액은 약 2685억 원이며, 이는 타 국가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독일의 경우, 생산량은 한국의 절반 수준이나, 약 38배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철강 산업 탈탄소화를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오는 2050년까지 수소환원제철, 전기로 등 철강산업 전환에 필요한 비용은 약 40조원 가량인데, 현재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관련 정부 지원금은 188억 원에 불과하다. 최근 스웨덴 'H2그린스틸'에 2억5000만유로(3750억원)을 지원한 유럽연합(EU), 수소환원제철 사업에 10억달러(약 1조3500억원)를 지원한다고 발표한 미국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일본의 경우 4500억엔(약 4조1500억원)의 기술 연구개발(R&D) 지원, 3조엔(약 27조7000억원)의 탈탄소 실증 및 설비 전환 지원과 세액공제를 한다. '그린스틸' 판매 t당 2만엔(약 18만4500원)의 설비 운영비까지 지원한다.

탄소배출이 없는 한국형 수소환원제철(HyREX) 기술 개발 및 설비 전환에 2050년까지 최소 2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까지 확정된 '23-'25년 정부 지원액은 269억 원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미국 청정경쟁법(CCA)과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을 앞둔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 1위 유지와 탄소배출량 감축을 동시에 이뤄내기 위해서는 정부 지원금 증액을 통해 수소환원제철 원천기술 확보 및 생산 설비의 전환 시점을 앞당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민·관이 돌파구를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 '산업부문 탄소중립 정책협의회'를 공동 개최했다고 밝혔다. 회의에는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과 이승렬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변영만 한국철강협회 상근부회장과 함께 김희 포스코홀딩스 전무 등 업계 임원·전문가들이 참석했다.

2026년부터 본격 시행되는 CBAM은 EU 수출 기업에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만큼 탄소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철강, 알루미늄, 비료, 수소, 시멘트, 전력 등 6개 품목에 적용된다.

2025년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 CCA는 미국에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 등 12개 제품에 대해 미국 제품 평균 탄소집약도 기준을 초과하는 배출량에 t당 55달러(약 7만3000원)의 탄소조정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글로벌 탄소규제는 개별 기업이 아닌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전체 탄소배출량의 산정과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부는 공급망으로 연결된 기업 간에 탄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지난달 25일 발표한 바 있다.

우선 업계는 철강 산업 수소환원제철 지원을 건의했다. 김희 포스코홀딩스 전무는 “탄소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이 개발·상용화되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제를 석탄에서 수소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연간 370만t의 그린수소와 추가적으로 4.5GW의 무탄소 전력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그린수소와 무탄소에너지를 차질 없이 공급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5 국가 탄소감축목표(NDC) 수립 과정에서 기술혁신 속도를 감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본부장은 “국내 철강산업의 지속 성장과 도약을 위해서는 수소환원제철 기술과 혁신형 전기로의 상용화가 시급하게 추진돼야 한다”며 “2035년 NDC 수립은 기술개발 속도와 함께 무탄소 에너지, 철 스크랩 공급 등 제반 여건을 면밀하게 검토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자금지원과 탄소중립 플랫폼 구축을 통한 해결을 제안했다. 이승렬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은 “정부는 철강부문의 핵심기술 개발과 세제·융자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며 "공급망 기업 간에 탄소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플랫폼을 조속히 구축해 철강·알루미늄 산업 탄소중립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탄소중립을 선도적으로 이행하려는 기업들이 미래의 불확실성과 투자 리스크 때문에 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이번 철강·알루미늄 업종을 시작으로 앞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 석유화학·정유, 배터리·자동차 등 총 11개 주력업종의 탄소중립 이행실태를 점검하고 경쟁력 강화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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